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컬럼/인터뷰

임진록, 삼국지를 품다 정종필 테크니컬 아티스트 인터뷰 / 우리가 사랑한 한국 PC 게임

한빛미디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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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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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세용, 오영욱, 조기현

14,3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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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자기소개 부탁 드리겠습니다.


아마추어 개발팀인 HQ팀에서 그래픽으로 게임 개발을 시작해 거의 30년째 업계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거의 모든 그래픽 파트를 경험해봤고 한국에 TA(technical artist)라는 개념이 없었을 때부터 TA 일까지 도맡아서 해왔었습니다. 

 

프로젝트는 <충무공전>에서 시작해 <임진록> 시리즈, <천년의 신화>(2000 ), 에이케이인터렉티브(AK Interactive)의 <거상巨商> (2002 ), 넥슨레드(NexonRed)의 <아틀란티카 Atlantica>(2008 ), 엔도어즈(Ndoors)의 <삼국지를 품다>(2014 ), 액트파이브(Actfive)의 <열혈강호M>(2018 ) 등의 개발에 참여했습니다.

 

그리고 청강문화산업대학교 게임콘텐츠스쿨에서 전임교수로도 일했습니다. 현재는 데브캣에서 <마비노기>의

모바일 버전 개발에 참여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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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충무공전> 게임 타이틀

 

Q: 게임 업계에 들어오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요?


엔드림(Ndream)의 김태곤 대표를 주축으로 고등학교 친구들 네 명이 시작했습니다. 처음에는 프로그램 두 명, 사운드 한 명, 그래픽 한 명으로 시작했죠. 

 

고등학교 때는 서로 알고만 지내던 사이었습니다. 대학생이 되고 프로그래머 친구 두 명이 게임을 만들려고 하니 그래픽과 사운드가 필요하다고 제게 연락을 주었죠. 

 

그때 ‘학교에서 만화 좀 그린다’는 친구로 기억했던 것 같아요. 프로그래머인 김제형 씨의 집에서 처음 프로젝트를 봤는데 화면에 녹색과 빨간색 점만 움직이고 있었습니다. 

 

제가 무엇을 해야 하냐고 물으니 툴을 만들어줄 테니 그림을 그려 달라고 했습니다. 이것이 게임 개발에 참여하게 된 시작이었습니다. 1992년도 대학교 2학년이었을 때입니다.  

데모는 판타지 게임이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첫 상업작부터 한국 역사 소재에 익숙하지 않은 RTS였죠. 

 

Q: 지금 보면 무모하게 느껴질 수도 있는 도전이었는데 그에 따른 에피소드가 있나요?

 

대학생 때 네 명의 친구가 밤마다 모여서 만든 첫 프로젝트는 ‘나이트 마스터’라고 하는 데모 프로젝트였습니다. 밤만 되면 프로그래머 친구 집에 모여 민폐를 끼치면서 만든 학생 작품이었죠. 

 

개발자는 네 명인데 컴퓨터는 두 대밖에 없었어요. 

컴퓨터가 귀했을 때였거든요. 그래서 두 명이 자는 동안 나머지 두 명이 개발하는 식으로 작업을 했죠.

그때 만든 작품을 PC 통신 동호회에 올렸는데 반응이 나쁘지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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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이트 마스터’ 스크린샷

 

다들 군 입대 시기가 오게 되자 함께 제대하고 다시 게임을 만들기 위해서 동시에 군대에 가기로 했습니다.

군대에 있는 동안 서로 부족한 점을 공부하고 군사 우편으로 차기작을 서로 이야기하면서 준비를 했습니다. 

 

약속대로 동시에 제대한 후 김태곤 씨를 주축으로 한 <충무공전> 을 만들게 됐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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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충무공전> 스크린샷

 

Q: 개발하는 장르가 역사 게임인데 재미있었던 에피소드가 있나요?

 

개발 리더인 김태곤 씨가 역사를 무척 좋아하고 지식도 많았어요. 그러면서도 재미있는 일화도 있었지요.

당시에는 패키지 게임 시장이었어요. 그러다 보니 게임의 주 구매층은 아이를 위해 마트에서 게임을 사는 부모인 경우가 많았죠. 

 

이때 영어로 된 이름의 괴물이 나오는 게임 패키지 사이에 충무공 이순신 장군이 나오는 게임이 있으면 부모가 어떤 게임을 사주겠냐는 것이 우리의 주장이었습니다.

 

거기에 ‘우리나라 역사를 기반으로 하는 게임’이라면 신문에서도 기사를 내줄 것이고 이것은 공짜 광고와 마찬가지라는 주장도 했죠. 

 

실제로 그게 통하는 것을 보고 놀랐습니다.

또 하나 알게 된 것은, 그런 이점이 정작 글로벌 시장에서는 제대로 통하지 않는다는 한계였습니다. 

 

예전에 <임진록>을 미국에 수출할 때 미국에서 패키지 디자인을 해온 적이 있었어요. 너무나도 당당하게 ‘사무라이’를 주인공으로 그려서 왔죠. 

 

미국인에게 동양의 장수란 사무라이였던 겁니다. 그때 ‘아직 우리나라 역사는 글로벌 시장에서 통하기에는 무리가 있구나’라고 생각하게 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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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진록>

_발매 시기:  1997년 8월

_장르: RTS
_개발사: HQ팀
_유통사: 삼성전자
_가격: 46,200원
_플랫폼: 윈도우 95
_매체: CD-ROM
_주요 사양: IBM PC 486 이상(권장 펜티엄 60), 램 8MB 이상(권장 16MB), HDD 15MB 이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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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패키지 게임 개발을 계속 해오다가 온라인 게임으로 자연스럽게 넘어가셨죠. 당시 분위기는 어땠나요?

 

패키지 게임을 하면서 온라인 게임으로 전향하는 건 그때도 큰 모험이었습니다. 회사를 합병하고 크기가 커진 상태에서 패키지를 버리고 온라인으로 전향해야 하는데 처음부터 다시 하기는 힘들었죠. 

 

그래서 <임진록>을 기반으로 온라인을 얹었어요. 그게 런처에서 알파 버전처럼 시작했던 임진록 온라인 <거상>입니다. 처음에는 MMO(massively multiplayer online)를 만들면서 게임을 무료로 서비스하고 아이템만 판다는 아이디어를 김태곤 씨가 냈을 때 경영진의 반대가 엄청 심했습니다. 

 

그렇지만 미래를 내다본 김태곤 씨는 결국 그 의지를 밀어붙였고 큰 성공을 거두었죠.

 

Q: 패키지 게임 개발 당시의 툴이나 개발 기술 환경 같은 것에 대해 듣고 싶습니다. 지금은 폐기된 기술도 많을 것 같은데 인상 깊은 것이 있나요?

 

처음 게임을 만들 때는 포토샵이나 제대로 된 그래픽 툴도 없었을 DOS 시절이었습니다. 그래픽 툴을 프로그래머들이 만들어줬었죠. 세이브(save)나 로드(load)라는 글씨도 없이 색깔만 있는 버튼으로 만들어줬어요. Undo 버튼 같은 건 있지도 않았습니다. 

 

그러다 보니 작업한 게 한번에 다 날아가기도 했어요. 자조적으로 ‘한큐에 다운돼 다 날린다’는 의미로 지은 팀 이름이 HQdown이었고 이후에 부랴부랴 팀 이름을 지은 게 HQ팀이었어요.

이후에도 도스 버전에는 디럭스 페인트(deluxe paint)라는 걸출한 툴이 나왔지만 타일 에디터(tile editor)나 스프라이트 에디터(sprite editor) 같은 건 게임 엔진에서 바로 돌아갈 수 있도록 만들어준 것을 썼습니다. 별로 멋지진 않았죠. 역시 Undo 버튼은 없었고요. 

 

세이브 파일을 계속 다른 이름으로 저장하는 습관은 거기서부터 생겼습니다. 인하우스(내부) 툴에서 Undo가 있었던 기억이 전혀 없습니다. 개인적으로는 256색(index color ) 게임을 만들 때 쓰는 팔레트(palette)를 만드는것이 즐거웠어요. 

 

그때는 게임에서 쓸 수 있는 색이 256개로 한계가 있다 보니 그 색을 처음부터 제대로 정하는 것이 중요했거든요. 그래서 어떻게 하면 팔레트를 잘 만들 수 있나 연구를 많이 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대학원 때는 팔레트의 응용 법으로 논문도 썼습니다. 지금은 아무도 모르는 기술이겠지만요.

 

Q: 개인적으로 개발자의 학습에 대해 굉장히 옛날부터 관심을 가지고 실천을 해오셨던 것 같습니다. 이 부분에 대한 철학을 듣고 싶습니다.

 

저는 그래픽이라 프로그램적인 지식도 없었어요. 또 프로그래머들은 워낙 바빴기 때문에 충분한 지원을 받지 못한 적이 많아서 그래픽적 문제 해결을 위해 몸으로 많이 고생했어요. 

 

어떻게 하면 효율적으로 일할 수 있을지 많이 고민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프로그래머와 많이 싸우기도 했어요. 그렇게 싸우면서 프로그래머와 함께 개발하다 보니 어깨너머로 굉장히 많이 배웠습니다. 

 

프로그래머가 안 된다고하면 ‘어째서 안 되는지 내가 이해하게끔 설명해보라’ 하고 토론하면서 배운 게 많

았어요. 제가 TA 일을 할 수 있었던 배경이기도 합니다.

 

이렇게 알게 된 지식으로 그래픽 측면에서 생각할 수 있는 몇몇 기술이나 독창적인 아이디어를 가지게 됐습니다. 힘들게 알게 된 기술을 누구도 공유하지 않는 상황이 무척 안타까웠어요. 그러다가 미국에서 열리는 게임개발자콘퍼런스(GDC )에 참여하게 됐어요. 

 

GDC에서 외국 개발자들이 자기가 개발하면서 알게 된 지식을 모두 공유하는 데에 감명을 받았죠. 정말로 다 공개하더군요. 저도 ‘어차피 몇 년 지나면 다 구식이 되고 사라질 기술, 나부터라도 알고 있는 걸 공유하자’라는 생각으로 블로그에 스터디 자료를 공유하게 됐습니다. 

 

분에 ‘대충 살아가는 게임개발자(https://chulin28ho.tistory.com/)’ 블로그를 알아보는 분이 많아졌습니다.

이런 생각을 가지고 학교에서 강의를 하게 됐을 때, 그래픽이라는 이유로 자기 분야에 한정된 지식만을 가지고 공부하는 것이 아니라 좀 더 넓은 시야로 다른 파트의 지식을 알아보고 궁극적으로는 게임 개발 방법에 대해 이해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가르쳤습니다. 

 

정리해서 공유하는 방법도 지도했어요. 결론적으로는 꽤 의미가 있는 행동이었고 현재까지도 잘한 선택이었다고 생각합니다.

 

Q: 게임 제작을 꿈꾸는 지망생에게 한 말씀 부탁드리겠습니다. 

 

저는 게임 제작을 꿈꾸는 지망생보다는 회사에 이야기하고 싶어요. 키워진 인재만 기다리는 시대는 곧 끝날 겁니다. 교육 기관과 실무와의 수준 차이가 심해지면서 점점 원하는 인재를 구하기 힘들 겁니다. 

 

지금은 눈치만 보고 있는데 누군가가 적극적으로 나서서 게임 개발을 위한 신입 교육에 투자하지 않으면 안 될 날이 올거예요. 

 

이제 키워진 인재만 기다리지 말고 회사에서 게임 업계의 사이클을 돌릴 수 있도록 투자해야 합니다. 

야구단을 위한 투자보다 말이죠.

 

 


 

위 내용은 <우리가 사랑한 한국 PC 게임>을 재구성하여 작성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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