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을 바꾸려면 시간이 얼마나 필요할까?
다윈은 자신의 이론을 바로 출간하지 않았다. 진화론이 힘을 가지려면 사회적 배경과 학계가 인정해 주는 권위가 필요했다. 16세기에 벌어진 논쟁인 ‘지동설 (地動說, 태양이 우주의 중심이고 지구는 태양의 주위를 도는 천체 중 하나라는 이론)’ 논쟁도 이와 마찬가지였다. 인간이 모든 사물의 중심이라고 생각하던 시절, 지구는 자전하고 있지만 우리가 그것을 못 느끼기 때문에 태양이 움직인다는 이론이 존재했다(지구중심설). 밤 하늘의 별을 보자. 나는 가만히 있고 하늘의 별이 나를 중심으로 회전하는 것처럼 보인다. 해도 동쪽에서 떠서 서쪽으로 지는 것으로 보인다. 우리는 이것을 왜 인지하지 못할까? 모든 자연현상을 나를 중심으로 보기 때문이다. 우리는 짧은 범주(시간, 공간)에서는 변화를 감지하지 못한다. 하지만 긴 범주에서는 감지할 수 있다.
기원전 4세기 에우독소스(Eudoxos, 기원전 4세기의 고대 그리스의 수학자, 천문학자, 플라톤의 제자)가 제안하고, 아리스토텔레스(Aristotle, 기원전 384년~322년,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 플라톤의 제자)의 철학에 스며든 ‘천동설(天動說, 지구가 우주의 중심이며 모든 천체가 지구 주위를 돈다는 학설)’을 주장하던 시기에 설명이 안 되는 현상이 있었다. 별의 위치가 바뀌어 보이거나, 금성이 달처럼 다양한 모양으로 나타나는 등의 현상이 바로 그것이다. 매일 짧은 시간 동안 관찰하면 변화가 없어 보이지만, 6개월이나 1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관찰하면 변화가 보인다. 이런 변화에 대해서 코페르니쿠스(Nicolaus Copernicus, 1473년~1543년, 폴란드의 천문학자)는 반대로 생각했다.
“하늘이 도는 것이 아니라, 지구가 도는 것은 아닐까?” 그 이론을 대입해 보니 모든 것이 설명이 되었다. 지구가 태양 주위를 돌고 있는 것이다. 즉, 하늘은 그대로이고 우리가 딛고 있는 땅인 지구가 돌고 있었던 것이다. 그는 1543년 출간한 책 『천구의 회전에 관하여』에 ‘지동설’을 담았다. 사람의 의식을 바꾸기는 힘들다. 갈리레오 갈릴레이(Galileo Galilei, 1564년~1642년, 이탈리아의 철학자, 과학자, 물리학자, 천문학자)는 망원경을 이용한 관측으로 코페르니쿠스의 이론을 입증했다. 그리고 지동설을 주장하는 책을 출판했다. 하지만 1633년에 그는 종교 재판을 받았고, 앞으로 지동설을 주장하지 않는다고 약속한 후 풀려났다.
지금 우리는 지동설을 의심하지 않는다. 이미 과학적 사실과 인공 위성의 관측을 통해 지구가 돌고 있다는 것을 직접 확인했기 때문이다. 이 관념이 바뀌기까지는 많은 이론과 논쟁을 거쳐야 했다. 힘들지만 꼭 필요한 과정이다. 천동설이 처음 등장한 BC 4세기부터 지동설 주장으로 종교 재판이 열린 1633년까지, 약 2000년의 시간이 지난 후에야 우리는 기존 관념을 의심할 수 있었다. 다윈의 ‘진화론’도 마찬가지다. 창조론의 기반은 6일 만에 지구가 만들어졌다는 젊은 지구 창조론(Young Earth creationism, 창세기의 기록을 문자적으로 해석, 지구의 나이는 6,000년~12,000년이고 최초의 6일 동안 모든 창조가 이루어졌다는 기독교 창조론의 한 종류)과 성경(BC 1500년~400년, 오랜 세월을 거쳐 기술되었으며 BC 5세기에 책으로 정립)의 기록이다.
1859년에 『종의 기원』이 등장하면서 기존 창조론은 진화론과 대치되는 상황이 되었다. 창조론이 거론되기 시작한 B.C 1500년을 기준으로 보면, 약 3360년이라는 시간이 걸린 셈이다. 오래된 나무의 뿌리가 깊듯 천동설과 창조론 또한 그 시기만큼 깊은 의식의 뿌리를 가지고 있던 것이다. 다윈의 진화론은 사람의 의식에 새로운 발을 들여 놓았고, 여기에는 많은 논쟁과 긴 토론의 시간이 필요했다. 우리의 미래에는 어떤 논쟁이 기다리고 있을까? 아직은 모르지만 미래에는 더욱 다양한 주제로 논쟁이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여기에는 데이터가 큰 역할을 할 것이다.
데이터를 기반으로 한 신념
다윈은 비글호 항해를 마친 후 정립한 『진화론』을 당시 사회가 받아들이기 힘들 거란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그는 사회가 좀 더 성숙해질 필요가 있고 사회적 인정을 받기 위해서는 과학적 근거가 더 마련될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다윈은 따개비 연구와 각종 학회 활동을 통해 자신의 위상을 높였고 22년이 지나 『진화론』을 발표했다. 학회는 양분되었다. 다윈의 반대편은 원숭이 모습을 한 다윈의 그림을 내세우며 그의 이론을 비웃었다. 종교에서도 들고 일어났다. 다윈은 22년간 자신의 이론을 증명하기 위해 이론적 토대와 사회의 성숙을 기다린 끈질긴 사람이다. 그는 자신을 향한 사회적 비난과 비판을 또 다른 기다림으로 대응했다.
‘천동설’에서 ‘지동설’로 바뀌는 동안 거쳤던 고뇌의 시간과 같은 과정이었다. 다윈은 20대 초반에 비글호를 타고 항해를 다녀왔다. 5년간의 항해는 그의 인생에 많은 영향을 주었다. 항해를 마치고 출간한 『비글호 항해기』는 베스트셀러가 되었으며, 세상 사람들에게 다윈의 이름을 각인시켰다. 22년 동안 준비한 『종의 기원』은 출간 전부터 사람들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1859년 11월, 첫 인쇄본 1,250부는 출간되기 전부터 사전 예약으로 다 팔렸다. 두 번째 인쇄본 3,000부 또한 동이 났다. 그만큼 큰 이슈였던 것이다. 이 이슈는 다음 해인 1860년 6월, 옥스포드에서 열린 영국과학발전협회 연례회의를 통해 수면에 드러났다.
700여 명의 관객이 들어찬 곳에서 벌어진 토론은, 다윈의 진화론을 옹호하는 세력과 이를 반대하는 세력의 과감한 설전으로 이어졌고, 이 내용은 언론의 좋은 기사감이 되었다. 진화론을 옹호한 이들 중, 영국에서 가장 뛰어난 생물학자이자 해부학자인 ‘토머스 헉슬리(Thomas Henry Huxley, PRS, 1825년~1895년, 영국의 생물학자)’의 기막힌 답변은 아직도 사람들의 머릿속에 오래도록 남아있다.
“나는 원숭이가 내 조상이라는 사실이 부끄러운 것이 아니라 (당신처럼) 뛰어난 재능을 가지고도 사실을 왜곡하는 사람과 혈연 관계라는점이 더욱 부끄럽습니다.”
찰스 다윈의 『종의 기원』은 인간이 진화된 생물임을 주장한다. 이는 창조론을 바탕으로 하는 종교적 이론에 맞선 것이다. 과학자의 신념은 수없이 많은 실험과 조사 관찰을 통해 얻은 데이터를 기반으로한다. 22년의 기다림과 연구는 인간의 기존 상식을 깨뜨리기 위해서 필요한 시간이었다. 다윈의 데이터는 곧 시간의 기록이었다. 22년간의 연구는 5년간의 비글호 항해를 통해 축적된 데이터를 더욱 성숙시키는 과정이었다. 다윈의 논리와 신념은 그 자신이 기록해 온 데이터를 근간으로 한 것이다.
데이터는 팩트라서, 수집된 순간과 관찰된 시점을 기점으로 기록된다. 이렇게 기록되고 누적된 데이터는 생물의 변화를 객관적으로 보여주는 증거가 된다. 데이터는 현재를 기록한다. 이것이 누적되면 과거부터의 시간을 포함한 ‘역사성’을 가진다. 이는 데이터의 가치를 더욱 높여준다. 다윈뿐만 아니라 라듐을 발견한 마리 퀴리(Marie Curie, 1867년~1934년, 폴란드 출신의 프랑스 과학자, 방사능 분야의 선구자이며 노벨상 수상자)도 긴 시간 연구와 실험을 통해 방사능 원소를 발견했다.
그녀는 1895년 결혼 후 과학자인 남편과 같이 연구했다. 8톤의 폐우라늄 광석을 얻어 연구소 앞마당에 쌓아 두고 실험한 결과, 1902년 0.1g의 순수한 염화라듐(RaCl2, 염소와 라듐의 화합물)을 얻었고, 1910년에는 전기 분해를 통해 금속 라듐(Radium, 원자번호 88번, 원소기호 Ra)을 얻었다. 이 과정에서 1903년 남편과 공동으로 노벨 물리학상을 수상했고, 1911년에는 그녀 단독으로 노벨 화학상을 수상했다. 결국 과학자의 연구는 실험에서 얻은 데이터와의 싸움이다. 실험 전과 후에 얻은 데이터의 변화로 자신의 이론과 새로운 물질이 만들어지는 것이다. 데이터의 가치는 데이터 그 자체로 존재할 때보다, 다른 데이터와의 비교가 이뤄지고 시간의 흐름이 반영되었을 때 더욱 빛난다. 마리퀴리가 라듐을 찾아낸 것도 데이터를 기록하고 변화의 과정을 살핀 덕분이며, 다윈이 자신의 이론을 증명한 것도 데이터를 비교하고 흐름을 파악했기 때문이다.
데이터에는 시간이 있다. 그 시간을 기반으로데이터를 분석한다면 변화하는 세상의 흐름을 객관적으로 볼 수 있게될 것이다.
“끝까지 살아남는 생물은 가장 강인한 생물도, 가장 지혜로운 생물도아니다. 그것은 변화에 가장 민감한 생물이다.”
— 찰스 다윈
▲ 『Charles Darwin's Notebooks from the Voyage of the Beagle』의 일부
출처: https://bit.ly/2Ofaqs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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