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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스토리는 포르노의 스토리 같다고? 진짜 '게임다운 스토리텔링'의 의미와 분류

한빛미디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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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1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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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진희

970

게임다운 스토리텔링의 의미

 

“게임 스토리는 포르노의 스토리와 같다. 있으면 좋겠지만, 중요하지는 않다.”

- 존 카맥John D. Carmack

 

게임 스토리에 관한 논쟁에서 빠지지 않는 문구 중 하나다. 스토리가 필요 없는 게임도 존재한다. 하지만 게임의 몰입도를 높이기 위해 스토리를 활용하는 것이 일반적이므로 이 말은 반은 맞고 반은 틀렸다고 할 수 있다.

 

게임 <둠> 시리즈의 개발자 존 카맥의 말과는 달리, <둠>은 스토리가 없는 게임이 아니다. 해병대원인 주인공이 지옥에서 온 악마에 맞선다는 세계관을 바탕으로 캐릭터, 몬스터, 무기, 배경 등이 만들어졌다. 아마도 존 카맥은 ‘스토리=텍스트’라고 생각했을 가능성이 높다. 그가 위대한 게임 개발자인 것은 분명하지만, 그 당시 존 카맥이 게임 스토리에 대해 가졌던 인식은 평범한 게이머 수준을 벗어나진 못했다.

 

존 카맥의 주장과 관련해서 ‘게임에서 스토리의 필요성’이라는 다소 원론적인 주제에 대해 영화를 통해 이야기해볼까 한다. 세계 최초 영화인 <열차의 도착>은 열차가 역에 도착하는 것을 찍은 50초짜리 단순 기록물이다. 편집 없이 어떤 대상을 찍은 영상이 영화의 시작이었다. 찾아보면 정말로 열차가 도착하는 장면을 찍은 영상이어서 아무런 감흥이 없을 것이다. 만약 영화가 그 상태에만 머물렀다면 지금은 사라진 매체가 되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후에 영화는 스토리와 결합하면서 지금의 영화와 같은 힘을 가지게 되었다. 흔히 말하는 ‘영화적 서사’가 완성되면서 초기 영화와는 완전히 다른 몰입도를 만들어낸 것이다.

세계 최초의 영화 <열차의 도착>

스토리는 일종의 수단이자 도구다. 게임에서 스토리가 활용되는 이유도 영화와 같다. 게임에 몰입하도록 만들기 위한 아주 당연한 선택이라고 봐야 한다. 게임을 만드는 입장에서 스토리라는 강력한 도구를 굳이 활용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

 

‘게임다운 스토리텔링’은 게임이라면 그 매체의 특성에 맞는 스토리텔링을 해야 한다는 의미다. 영화는 대사가 아닌 영상으로 시각화해서 보여주는 것을 지향한다. 게임이라면 텍스트나 영상이 아닌 시각화된 플레이 형태로 스토리가 전달되어야 한다. 이런 관점에서 본다면 비주얼 노벨은 게임답지 않다. 게임으로 분류하기도 하지만, 플레이의 비중이 적다는 점에서 게임이라고 하기에 애매한 측면이 있다. 플레이어의 경험적인 측면에서 봐도 소설에 더욱 가깝다.

 

게임의 본질은 플레이를 통해 얻게 되는 경험이다. 플레이는 게임 시스템에 따라 달라지므로 게임 시나리오에서 게임 시스템의 역할은 중요하다. MMORPG를 예로 든다면 스토리 전달의 도구인 ‘퀘스트’가 대표적인 게임 시스템이라 할 수 있다. 퀘스트 스토리텔링에서 중요한 것은 ‘스토리를 어떤 플레이 타입으로 전달할 것인가?’이다. 같은 스토리라도 플레이 타입에 따라서 몰입도가 달라진다. 특히 전투 유무에서 오는 경험의 차이는 크다. 이른바 ‘텔링’의 차이이자, 게임 시나리오 작업에서 우선적으로 고려해야 하는 부분이다.

 

스토리텔링에 대한 설명에서 빠질 수 없는 게임이 <이코>다. <이코>는 ‘소녀를 지키는 소년’이라는 아주 단순한 스토리를 가지고 있다. 이 스토리의 텔링을 위해 게임 패드의 진동을 활용했다. 게임에서 소녀의 손을 잡으면 진동을 통해 그 감정을 전달받을 수 있다. 대사의 사용도 제한적이다. 게임적인 스토리텔링을 설명할 수 있는 가장 적절한 게임이다

<이코>의 한 장면

게임 스토리의 분류

 

게임 시나리오 작업이 어려운 이유는 게임마다 적용되는 스토리텔링의 방법론이 다르기 때문이다. 각 게임에 맞는 방법론을 적용해야 하지만, 아직까지 그 부분에 대한 제대로 된 고민은 찾아보기 어렵다. 지금까지의 게임 시나리오 작법은 소설이나 영화의 스토리 작법을 빌려와 설명하는 것에 그쳤다. 즉, 어떤 게임을 어떤 방법론으로 작업해야 할지에 대한 고민이 부족했다. 

 

그러나 게임은 영화나 소설과는 분명 다른 매체다. 무엇보다 MMORPG로 대표되는 온라인 게임에서 요구되는 스토리텔링에 대한 제대로 된 방향성을 제시하지 못했다. 그렇다 보니 작업자의 역량에 의존해서 작업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게임의 특성을 제대로 분류할 수 있다면 그 자체로 하나의 방향성이 될 수 있다. 게임 스토리의 분류 기준이라고 하면 ‘장르’를 먼저 떠올릴 수 있겠지만, 결론부터 말한다면 장르는 게임 스토리의 분류 기준이 될 수 없다. 예를 들어 싱글 RPG와 MMORPG를 스토리텔링의 측면에서 본다면 완전히 다른 게임이다. 

 

물론 장르로 따진다면 같은 RPG라고 할 수 있지만, 플랫폼이나 게임이 추구하는 방향성이 다르다 보니 서로 다른 스토리텔링이 적용된다. 그래서 필자는 ‘장르’라는 불완전한 분류 기준이 아닌, 새로운 기준에 대해 고민하게 되었다. MMORPG의 퀘스트를 만들면서 고전적인 스토리 작법을 적용하여 스토리 중심의 스토리텔링을 하기 위해 노력했다. 그러나 실제로 작업해 공개한 퀘스트의 피드백을 살펴봤을 때 막상 플레이어들이 반응한 것은 캐릭터였다. 캐릭터를 통해 스토리에 몰입했고, 해당 스토리에는 플레이어에게 각인된 캐릭터가 항상 존재했다. 그때부터 게임에서 캐릭터의 역할이 생각했던 것보다 중요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렇다고 스토리가 중요하지 않다는 의미는 아니며 방법론적인 측면에서 어디에 조금 더 중점을 둘 것인가에 대한 문제다. 게임뿐만 아니라 다른 스토리 기반 콘텐츠에서도 캐릭터가 중요하다고들 말한다. 그러나 게임의 캐릭터가 특별한 이유는 스토리의 주인공이라는 역할에서 한발 더 나아가 플레이어가 게임의 세계를 간접 경험하게 해주는 ‘매개체’의 역할까지 담당하기 때문이다.

 

MMORPG 이후 AOS(MOBA) 게임 제작에 참여하면서 게임 캐릭터의 의미를 다시 한번 고민하게 되었다. AOS 장르는 대전 액션 게임과 더불어 다른 어떤 장르보다도 캐릭터가 중요한 게임이다. 그 과정에서 스토리 중심 게임과 캐릭터 중심 게임이라는 분류가 게임 시나리오 작법의 기준이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분명 의미 있는 분류이지만, 역시나 가장 큰 문제는 MORPG와 MMORPG의 스토리텔링을 제대로 설명하기 힘들다는 점이었다.

 

조금 더 생각이 발전한 계기는 AR 게임을 만들면서였다. <포켓몬 고>처럼 플레이어가 게임 캐릭터가 되어서 현실 공간을 돌아다녀야 하는 게임이었는데, 어떤 면에선 VR 게임에 가까웠다. 이때 ‘플레이어와 캐릭터 간의 거리’라는 개념을 생각하게 되었다. VR 게임에서 플레이어는 캐릭터 자체가 되므로 플레이어의 행동이 게임 세계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 지금까지의 게임에서 경험하기 어려웠던 직접 경험의 형태다. 반면 기존 게임은 캐릭터를 조작해서 게임 세계를 경험하는 간접 경험의 형태다. 이 차이는 ‘플레이어가 게임 세계에 개입하는 정도’였다.

 

소설의 시점을 떠올리면 이해가 쉬울 것이다. 소설에선 화자가 작품 안에 있다면 1인칭, 작품 밖에 있다면 3인칭으로 구분한다. 같은 맥락에서 플레이어가 게임의 캐릭터라면 1인칭, 플레이가 게임의 캐릭터가 아니라면 3인칭에 해당한다. 그러나 MMORPG는 1인칭과 3인칭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다. 이를 정리한 것이 [표 1-1]이다.

 

 

3인칭 관점을 싱글 플레이 게임Single-Play Game이라고 생각하면 이해가 쉬울 것이다. 우리가 잘 아는 소설, 웹툰, 드라마, 영화와 같은 스토리 기반 콘텐츠는 모두 3인칭 관점이다. 구분이 필요한 이유는 기존의 스토리 구조와는 다른 스토리 구조를 가진 게임이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새로운 게임을 만드는 과정에서 탄생한 것이 MMORPG와 VR/AR 게임이다. 이들 게임의 특징은 고전적인 스토리 구조와 다르다는 점이다. 3인칭 관점은 고전적인 스토리 작법을 그대로 적용할 수 있다는 점에서 상대적으로 스토리텔링이 쉬운 편이다. 스토리가 뛰어나다는 평가를 받는 게임 대부분이 3인칭 관점에 속한다. 흔히 말하는 ‘고전 명작’은 모두 여기에 해당한다.

 

중간적 관점은 MMORPG를 설명하기 위한 분류다. MMORPG에서 플레이어는 게임 세계를 간접 경험한다. 캐릭터를 매개체로 하지만 그 캐릭터는 아바타Avata다. 아바타는 플레이어의 대리인이자 분신이어서 캐릭터가 아닌 하나의 인격체로 인식된다. 3인칭 관점의 게임 캐릭터와는 분명한 차이가 있다. 사실상 1인칭 관점의 직접 경험을 지향한다. [표1-1] 중간적 관점의 도식처럼 플레이어와 캐릭터의 거리가 중간 정도에 위치한다.

 

MMORPG의 멀티 플레이를 지향한다는 점에서 모든 플레이어는 같은 공간에 모일 수 있어야 한다. 게임에서 플레이어는 스토리의 주인공이라는 점에서 같은 세계에 다수의 주인공이 존재한다고 볼 수 있다. 반면 3인칭 관점의 고전적인 스토리 구조에서 주인공은 유일한 존재다. 이때 유일하다는 개념은 그 세계에 한 명뿐이라는 ‘존재’의 의미로 ‘수’를 뜻하는 것은 아니다. 영화 <오션스 일레븐>의 주인공은 열 명이 넘지만 모두 다른 존재로 인식된다는 점에서 유일한 주인공이라 할 수 있다. 모두가 각기 다른 역할을 부여받는다. 그러나 MMORPG에서는 모든 플레이어가 주인공이며 주인공의 역할도 같다. 사실상 클론에 가까운 형태가 된다는 점에서 3인칭 관점과 구분된다. ‘같은 세계를 공유하는 다수의 주인공’이라는 중간적 관점의 스토리 구조는 고전적인 스토리 작법을 완전히 적용하기 힘들다는 점에서 스토리텔링에 어려움이 있다.

 

플레이어와 캐릭터가 일치하는 대부분의 VR 게임과 일부 AR 게임이 1인칭 관점에 속한다. 이때 플레이어는 직접 게임 세계의 캐릭터가 되어 플레이한다는 점에서 일종의 ‘역할 놀이’라 할 수 있다. <포켓몬 고>는 플레이어가 현실 세계에서 포켓몬 트레이너가 되는 역할 놀이를 하는 1인칭 관점의 대표적인 게임이다. 게임의 공간이 되는 세계가 현실이라는 점에서 VR과 차이가 있지만, 기본적인 방향성은 같다. 그러나 AR의 이미지 겹침과 같은 부분적 연출만 활용하는 게임은 1인칭 관점에 속하지 않는다. 플레이어 자체가 게임의 캐릭터가 되지 못하기 때문이다.

 

같은 이유로 3인칭 시점(TPV)의 VR 게임은 1인칭 관점에 속하지 못한다. 게임 내용이 완전히 같다고 하더라도 게임의 시점이 3인칭이 되는 순간 플레이어와 캐릭터 간의 거리가 생긴다. 1인칭 시점(FPV)10이 플레이어를 게임 안에 존재하게 한다면, 3인칭 시점(TPV)은 플레이어를 게임 밖에 존재하게 한다. 3인칭 시점(TPV)의 VR 게임에서 플레이어는 게임 캐릭터가 되지 못한다. 1인칭 

시점(FPV)의 VR 게임에 비해 플레이 경험이 떨어지는 것은 당연하다. 사소해 보이는 카메라 시점의 차이는 게임의 몰입감과 게임 방향성의 차이로 이어진다. 1인칭 관점은 ‘플레이어의 행동이 게임 세계에 직접 영향을 끼치는가?’를 기준으로 분류하면 된다. VR 게임에서 ‘어떤 대상을 볼 것인가?’는 게임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 <포켓몬 고>에서 포켓몬을 잡기 위해 실제 장소로 이동하고, VR 게임에서 모션 컨트롤러를 사용하는 것도 여기에 해당한다. 현실의 행동이 그대로 게임에 반영된다.


위대한 게임은 ‘완벽히 설계된 스토리’에서 탄생한다
플레이어를 매료시키는 스토리텔링의 비밀을 밝혀라!

 

"최고 전문가에게 배우는 게임 시나리오 작법 바이블"

 

게임 시나리오 작법을 위한 필독서, 『이론과 실전으로 배우는 게임 시나리오』가 더욱 강력한 개정판으로 돌아왔다. 이 책은 단숨에 빠져들게 하는 게임 스토리를 기획하고, 이를 게임 플레이에 자연스럽게 녹여 플레이어에게 완벽한 몰입감을 선사하는 비법을 안내한다. 게임 업계 최전선에서 17년간 활약해온 베테랑 게임 시나리오 작가의 탄탄한 기획력을 바탕으로 매력적인 세계관을 디자인하고, 기억에 각인되는 캐릭터를 창조하며, 장르별 최적의 시나리오를 설계하는 방법까지 모두 담았다.

 

특히 이번 개정판에는 어디에서도 볼 수 없었던 게임 시나리오 컨설팅 실제 사례와 생성형 AI를 활용한 시나리오 작법을 추가했다. 이로써 게임 개발 현장에서 직면할 수 있는 다양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실용적이고 구체적인 방법을 제시한다. 더불어 영화영상을 전공한 저자의 섬세한 비주얼 연출력으로 영화처럼 생동감 넘치는 컷신 구현 기술까지 소개한다. 강렬한 게임 스토리 기획을 꿈꾼다면 이 책이 최고의 시작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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