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바로가기 검색 및 카테고리 바로가기 본문 바로가기

한빛출판네트워크

한빛랩스 - 지식에 가능성을 머지하다 / 강의 콘텐츠 무료로 수강하시고 피드백을 남겨주세요. ▶︎

IT/모바일

흑백사진 속 에니악 앞에 서 있던 이름 없는 이들은 누구일까?

한빛미디어

|

2024-02-08

|

by 캐시 클라이먼

5,684

흑백 사진 속 여성들을 바라보고 있노라니 그들이 내게 말을 걸어오는 듯했다. 

당시 나는 하버드 중앙 도서관인 러몬트 도서관에 앉아서 20세기 컴퓨팅 분야를 이끈 미국 여성들에 관한 논문을 조사하는 중이었다. 그때 내가 알고 있던 유일한 인물은 훗날 호퍼 소장이 된 미 해군의 그레이스 호퍼Grace Hopper 대령뿐이었다. 물론 영국 시인 바이런 경의 딸인 에이다 러브레이스Ada Lovelace 여사가 19세기 초기 프로그래밍 개념에 기여하긴 했지만 그녀는 미국의 여성 역사 강의 범주에 속하지 않았다.

 

나는 컴퓨팅 분야에 관심이 있는 젊은 여성이었고, 과거에도 컴퓨팅 분야에 종사한 여성이 있었는지 알고 싶었다. 대학에 입학하면서 컴퓨터 과학 강의를 들었는데, 프로그래밍 강의 초반에는 수강생 절반 정도가 여성이었지만 마지막 수업까지 남은 여성은 한두 명뿐이었다. 나를 포함해 몇 명만 더 있었더라도 컴퓨팅 분야를 더 편안하게 느꼈을 것이다. 그래서 나보다 앞서 어떤 여성이 있었고 어떤 업적을 남겼는지 관심이 생겼던 것이다.
 

열람실 테이블 위에 컴퓨터 과학 백과사전과 컴퓨팅 분야의 역사에 관한 서적을 펼쳐 놓았다. 하지만 에이다와 그레이스를 제외한 여성의 이름은 어디에도 없었다. 또한 프로그래밍의 진짜 역사도 찾아볼 수 없었다. 온통 하드웨어와 1940년대, 50년대, 60년대 컴퓨터 역사를 지배했던 메인 프레임 컴퓨터를 만든 남성에 관한 이야기뿐이었다.


‘거대한 컴퓨터와 통신하는 방법을 개척한 이들의 이야기는 어디에 있을까?’

'명령 코드와 프로그래밍 언어의 역사는 1940년대, 50년대, 60년대로 거슬러 올라가는데, 

이런 걸 작성한 사람들의 이야기는 도대체 어디에 있을까?'


그러던 중 흑백 사진 하나를 우연히 발견했다. 

 

출처: <사라진 개발자들>, 캐시 클라이먼 저

 

사진 속에는 커다란 방의 삼면을 차지한 거대하고 검은 금속 컴퓨터, 그리고 왜소해 보이는 여섯 사람이 있었다.

사진 중앙에는 두 남성이 있고 오른쪽에는 제복을 입은 한 남성이 있으며, 그 양쪽으로 두 여성이 있다. 그리고 사진의 왼쪽 뒤편에도 한 남성이 더 있다. 하지만 사진에서 이름이 언급된 인물은 중앙에 있는 J. 프레스퍼 에커트와 존 모클리 박사, 두 남성뿐이었다.


두 사람은 세계 최초의 프로그래밍이 가능한 전전자식all-electronic 범용 컴퓨터인 에니악의 공동 발명가다. 에니악은 제2차 세계 대전 중 펜실베이니아 대학교에서 제작되었다. 사진과 함께 게재된 기사나 사진 설명, 그 어디에서도 사진 속 다른 이들의 이름은 찾을 수 없었다.

 

나는 그 사진을 면밀히 관찰하며 특히 두 여성에게 주목했다.
그들은 젊었고 제2차 세계 대전 당시의 헤어스타일을 하고 플랫슈즈에 치마 정장을 입고 있었다. 

더 가까이 들여다보고 있노라니 문득 그들이 에니악에 관해 무언가 알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치 살아 숨 쉬는 것처럼 보이는 이 커다란 거인의 손잡이를 조작하거나 그 옆에서 문서를 읽는 모습이 편안해 보였고 자신이 하는 작업을 잘 알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그들에게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나는 컴퓨터에 관해 어느 정도 알고 있었다. 

아버지는 신기술을 다루는 데 특화된 전기 기술자여서 집으로 전자 제품을 가져오시곤 했다. 그중에는 초기 계산기도 있었는데 현대의 계산기와 비교하면 투박하고 거대했으며 기능도 얼마 없었지만 가지고 놀기엔 재밌고 흥미로웠다. 아버지는 내가 아는 사람 중 처음으로 음성 합성과 음성 인식에 관해 이야기한 분이기도 했다. 아버지는 반도체 산업의 창설에 관한 논문도 작성하셨고 전자 제품의 소형화가 이어질 것이며 세상을 끊임없이 변화시킬 거라고 확신하는 분이었다.


중학교 1학년 때 친구들이 나에게 컴퓨터 프로그래밍을 배우고 싶냐고 물어봤고 나는 그렇다고 답했다. 

당시 나는 다양한 직업을 탐색하는 보이스카우트 혼성 분과인 탐사대에 가입해서 수요일 밤마다 오하이오주 콜럼버스에 있는 우리 집에서 가까운 AT&T의 제조 회사 웨스턴 일렉트릭 Western Electric에 가곤 했다. 그리고 1960년대에 다트머스 대학교에서 개발한 프로그래밍 언어인 베이식BASIC도 배웠다. 얼마 지나지 않아 친구들이 작성한 게임을 같이 즐겼고, 내가 베이식으로 작성한 매드 립스(빈칸에 생각나는 단어를 아무렇게나 채워서 이야기를 만드는 게임)도 함께 가지고 놀았다. 내가 만든 게임을 처음 플레이하던 날 친구들은 컴퓨터가 출력하는 웃긴 이야기를 보며 신나게 웃었다. 그때 내가 프로그래밍에 빠졌다는 걸 깨달았다.


오래된 흑백 사진 속 에니악 앞에 서 있는 인물들을 계속 바라보자니 이들의 이야기가 궁금해졌다. 더 깊이 파고들어 더 많은 책을 찾아본 끝에 다른 사진도 한 장 발견했다. 

출처: <사라진 개발자들>, 캐시 클라이먼 저
출처: <사라진 개발자들>, 캐시 클라이먼 저

 

에니악 앞에 서 있는 두 젊은 여성을 더 가까이서 찍은 사진이었다. 하지만 여전히 이들의 이름은 없었고 컴퓨터 이름만 있었다.  나는 이 두 장의 사진을 복사해서 앤서니 외팅거 교수님에게 가져갔다. 그는 국제적인 컴퓨터 전문가 모임인 컴퓨터 학회 ACMAssociation for Computing Machinery의 전임 회장이었다. 나는 교수님에게 에니악 사진 두 장을 보여주며 물었다. 

 

“이 여성들은 누군가요?”
“나도 모른다네. 하지만 알 만한 사람을 알고 있지.”


외팅거 교수님의 말에 따라 나는 보스턴에 설립되었다가 현재는 실리콘 밸리로 이전한 컴퓨터 박물관의 공동 창립자인 벨 박사님을 찾아갔다. 컴퓨터 박물관은 보스턴 시내에 박물관이 모여 있는 칠드런스 워프 끝자락에 있었다. 긴 부둣가를 따라 걸어가다 보니 어린이 박물관이 눈에 띄었고, 바다 위에는 보스턴 차 사건 수상 박물관의 선박도 있었다. 모두 들러보기 좋은 곳이었지만, 해야 할 일이 있던 나는 사진이 담긴 서류철을 꼭 쥐고 컴퓨터 박물관 안으로 들어갔다.
 

나는 컴퓨터 박물관의 관장실로 찾아갔다. 

짧고 짙은 회색 머리를 한 50대 초반의 벨 박사님은 명백히 매사 정확하고 바쁜 사람으로 보였다. 나는 서류철을 열고 다시 한번 흑백 사진 속 에니악 앞에서 있는 여성들을 가리키며 벨 박사님께 물었다.


“이 여성들은 누군가요?”

 

외팅거 교수님과 다르게 그녀는 답을 알고 있었다. 

“냉장고 숙녀 분들이에요.”


“냉장고 숙녀가 뭔데요?” 

벨 박사님의 대답에 당황한 나는 되물었다.


“모델인 거죠.” 

그녀가 당연한 걸 묻는다는 듯 답했다. 

 

흑백 텔레비전 광고에 등장해서 과장된 몸짓으로 신형 냉장고의 문을 여닫던 1950년대 프리지데어Frigidaire의 모델처럼, 이 여성들도 그저 보기 좋으라고 에니악 앞에 서서 포즈를 취했다는 것이다. 적어도 벨 박사님은 그렇게 생각했다.
그녀는 서류철을 덮어서 나에게 돌려주었다. 나가라는 뜻이었다.


나는 천천히 박물관 밖으로 나왔다. 어린이 박물관에 입장하려고 부둣가에 줄을 선 아이들을 보았고, 항구에 정박한 보스턴 차 사건 선박을 보았으며 밝고 푸른 하늘도 보았다. 그런데 벨 박사님의 이야기는 말이 되지 않는다고 느꼈다. 

 

나는 예전에 커다란 컴퓨터 앞에 서본 적이 있다. 

 

그런 컴퓨터를 처음 보면 너무 거대하고 압도적이어서 비현실적이기까지 하다. 그러나 사진 속 여성들은 그 거대한 컴퓨터가 무슨 일을 하는지, 자신들이 왜 거기에 있는지 분명하게 알고 있는 듯했다. 그들은 포즈를 취하고 있었지만 그건 사진 속 남성들도 마찬가지였다. 그리고 그 남성들은 모델이 아니었다.


부둣가를 떠나면서 스스로 과제를 만들었다. 

나는 이 여성들의 이름을 찾기로 했다. 이들이 무슨 일을 했기에 아름다운 1940년대 에니악 흑백 사진에 등장하게 되었는지 알아보기로 결심했다. 나는 그들의 이야기를 알아갈 예정이었다.

 


이 내용은 <사라진 개발자들>에서 발췌해 정리하였습니다.

 

이 이야기의 주인공이자 책 <사라진 개발자들>의 저자인 캐시 클라이먼은 학교 도서관에서 본 한 장의 사진을 계기로 무려 40년 동안 각종 영화, 다큐멘터리, 방송 등을 파헤치며 끈질긴 조사와 탐문을 이어갑니다. 그리고 흑백 사진 속 여성들, 애니악을 프로그래밍한 여성 프로그래머의 삶을 다큐멘터리와 책으로 복원해냅니다.

 

우리 모두가 잊을뻔 한 역사 속 사라진 개발자들, 최초의 여성 프로그래머 6인의 매혹적인 이야기는 <사라진 개발자들>을 통해 더 자세히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사라진 개발자들>

댓글 입력
자료실

최근 본 상품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