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은 우리 삶에 있어서 가장 큰 임펙트가 있는 두 개의 키워드로 만든 책이다.
마흔과 서재
개인적으로 이 두 개의 단어가 주는 무게감은 엄청나다. 마흔을 코앞에(?) 둔 한 사람으로서 이 책을 접하는 마음을 마치 중학교 입학을 앞둔 초딩 6학년이라고나 할까? 어쨌거나 마흔이 되기 전에 이 책 접할 수 있게 되어 저자께 매우 큰 감사를 드린다.
이 책은 크게 네 개의 장과 여러 절로 이루어져 있는데 각 절은 그간 저자가 수년간 읽은 책들을 통해 얻은 통찰의 엑기스를 품어내고 있다. 책을 읽는 내내 마치 풍성한 찬들로 이루어진 잘 차려진 최고급 한정식을 먹는 기분이었다. 한 절을 읽고 난 후 얻는 통찰은 보통 책 한 권을 읽은 것과 유사한 무게감과 충격으로 다가왔다. 이 통찰을 잘 소화하려면 각 절을 읽은 후 해당 내용을 사색해보는 시간이 반드시 필요하다. 각 절의 메시지 하나하나가 보통 책 한 권에서 얻는 통찰의 무게이기 때문에, 그냥 읽기만 한다면, 과연 저자의 통찰을 몇 퍼센트나 내 것으로 만들 수 있을지 의문스럽다.
팁으로 각 절의 제목과 함께 나열된 책들은 엑셀표로 만들어서 주제별 독서 목록으로 만들어도 매우 유익할 것이다. 이 책을 읽고 제일 먼저 한 것이 바로 이 독서 목록을 만든 것이었다.
나름 마흔을 다음과 같이 정의 해보았다.
마흔 = 초중고-대학-취업전쟁-사회 입문-약 10여 년간의 달림
마흔은 인생의 후반전이다. 여기까지 무조건 앞만 보고 달려왔다고 한다면 이제는 잠시 휴식을 하고 남은 인생에 무엇을 할지 평온하고 지혜롭게 사유할 시간이다. 이는 삶의 갈림길이기도 하며 이 갈림길에서는 책이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 바로 쉼 이후에 새로운 출발의 지침이 되고 가이드라인이 되기 때문이다. 이 새로운 시작은 우리의 삶을 더 깊이 있게 해 줄 수 있다.
수많은 감동의 문구 중 몇 가지만 적어본다.
## 산다는 것은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일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저 연명할 뿐이다.
가슴을 매우 크게 후벼 판 문구다. 이 얼마나 슬프고 슬픈 말인가! 대부분의 사람들이 타인의 소유와 삶, 행복을 부러워하며, 나만 힘들어한다고 생각한다. 주위에서도 흔히 보이는 현상이다. 물론 나는 이 슬픈 이야기를 내 것으로 만들지 않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지만.....
## 장서의 양이 지적 수준을 결정한다.
## 서재는 나의 창의력의 산실이고 지력의 근거이며, 지적 생산의 현장이다.
경제적 여건으로 아직 서재를 만들지 못했다면 핑계겠지?
## 아침부터 수고한 마음을 도닥거리고 어루만지며 남은 시간에는 무엇을 할 것인지 평온하고 지혜롭게 사유하라. 그런 이에게 오후는 길고, 충만하다.
하루의 일상, 매월, 분기, 년마다 우리는 이러한 사유의 시간이 필요하다. 각박하고 빠르게 흘러가는 인생에서 자칫 공허함과 외로움이 순식간에 몰려오기 때문이다. 주위에서도 이러한 현상은 매우 쉽게 보인다. 사회적으로 성공한 사람이던, 특별한 성공 없이 무난히 직장생활을 하는 사람이던 "평온하고 지혜로운 사유"를 누리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의 인생은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그 격차가 심하게 보인다. 결국, 자신의 인생을 사는 사람이 되느냐 남의 인생을 사는 사람이 되느냐의 차이이다.
## 늦지 않았다. 초조해하지 마라.
참 어려운 말이다. 잠시 느슨해지면 다른 경쟁자들이 금세 나를 추월하는 스피드 시대에 사는 우리로서는 빠름, 초조함이 일상이기 때문이다. 이런 현실에서 초조해하지 마라. 쉽게 받아들이기 어려운 문구이다. 아직 내공이 부족해서 일 수도....
## 변화를 꿈꾸며 과감하게 새 길로 들어서라.
## 새길에서 짐은 가볍게 하고 책으로 무게를 채워라.
얼마 전 변화를 꿈꾸며 어렵게 새 길(?)로 들어섬을 결정한 나로써 이 문구가 정말 가슴을 후벼팠다.새 길을 나서는 나에게 실패와 실수의 부담감은 가볍게 하고 책으로 무게를 채우라는 말이 매우 큰 힘이 된다.
## 당신은 마흔에 과감하게 삶을 변화 시킬 수 있는가?
일단 나는 시도는 했다는 데서 안도를.....최소한 부끄럽지는 않으니...
두 단어로 이루어진 책 제목 <마흔의 서재> - "마흔", 그리고 "서재" - 요즘 나에게 큰 변화를 주고 있는 단어들다. "마흔"은 아시다시피 피할 수 없는 세월의 화살이 되어 드디어 내 코 앞까지 와 있고, "서재"는 우연찮게 요즘 읽는 책들이 이전 보다 늘고 있다는 것이 이 책을 접할 때 내게 일어나고 있는 작은 변화다. 그런데 생각해보니, 하나는 어쩔 수 없는 것이라고 한다면 또 하나는 내가 선택한 것이었다. 이렇게 이 두 단어는 어쩌면 짝이 될 수 없는 - 한참 일하고 부지런히 뛰어야 할 마흔, 어떻게 하면 자리를 잡기 위해 동분서주 하는 마흔에 "서재"란 어울리지 않아도 이렇게 어울리지 않는 짝이 또 있을까 싶다.
그래서 그런지 묘한 매력을 지닌 조합 같다. <마흔의 서재> - 감히 범접하지 못하는 그런 포스인가?
이 책이 가진 또 한가지 특징이 있다. 그것은 이 책은 하나의 서평집이라는 점이다. 각 장마다 저자가 마흔 즈음에 한적한 시골 호수가에 집을 짓고 읽은 여러권의 책들에 대한 서평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리고 그 책들의 수 많은 메아리로 되어 있다. 이미 저자가 읽은 많은 책에서 저자가 말하고 싶은 <마흔의 서재>를 정리하고 그것이 곧 이 책의 주제이기도 하다. 진짜로 <마흔의 서재>를 공개한 것이다. <마흔의 서재>를 꾸미고, 또 그 책을 읽고 쓴 책이 <마흔의 서재>다. 책과 독서의 관한 책이자 "마흔" - 인생에 관한 책이기도 하다.
이 책은 많은 여운을 (아쉬움인가?) 남기는 책이다. 아쉬움이라고 한 것은 책에 대한 아쉬움이 아니라 이 책 앞에 서니 그리움이 거울처럼 비춰서인지 모르겠지만 아무튼 저자의 의도를 알고 나니 - 내 마음을 들킨것 같기도 하면서 마냥 좋으면서 그렇지 못한 현실에 대한 아쉬움이다.
책을 읽으며 "책을 읽는다"는 것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다. 텍스트를 읽는 것 - 그것은 시간이 걸리는 작업이자 노동이다. 글을 빨리 속독으로 읽는 방법도 있겠지만 아무튼 정독을 전제로 한다면 텍스트에 눈을 고정하고 음미하며 생각하며 책을 읽는 것은 시간 소비에 비례한다고 할 수 있다. 그런 시간의 소비가 책을 읽는 본질에 가장 근접해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시간이 많은 사람이 누가 있겠는가. 다 같은 하루 24시간이 주어졌으나 그것을 확장하고 제 4차원의 세계를 만들어주는 것이 책 읽기 아닌가 말이다. 이러한 "책읽기" 자체가 이 책이 말하는 <마흔의 서재>의 모습이 아닌가 한다. 그저 앉아서 책을 읽는 모습 말이다.
이 책이 마흔의 위로라고 스스로 생각한 것은 참 슬픈 현실이다. 근래 들어 김난도 선생님의 <아프니까 청춘이다>에 이어서 <천번은 흔들려야 어른이다>가 매우 베스트셀러인데 아마 이 책이 그 뒤를 잊는 마흔 시리즈가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누가 뭐래도 정말 마흔은 인생의 분수령이지 않나 싶다. 열심히 커서 배우고, 또 일하며 달려와서 보니 이룬것 못 이룬것이 눈에 선명하게 보이니 말이다. 산의 정상에 오른것에 비유할 수 있을까? 좋은 날 만나서 잘 보일 수도 있고 굳은날 만난 나는 산 아래 내가 오른길이 잘 보이지 않는다. 또 늦게 오를 수도 있고 빨리 오를 수 있지만 인생의 정상은 세월에 의해 누구나 오르는 그런 정상 말이다. 정상에 올라와 자신의 세계를 내려다 보는 것 - 잘 사는, 높은 빌딩에 삐까번쩍 할 수 있겠지만 또 그렇지 못한다 할지라도 아름답고 멋진 풍경이 될 것이다. 또 산 위에서 보면 모두 아무것도 아니고 도토리 키재기에 불과하다. 그것은 정상에 오른 것 그 자체가 보람되고 뿌듯함 그런 것이다.
그리고 이제 다시 내려갈 준비를 누구나 해야 한다. 풀렸던 다리에 힘을 더욱 주고, 눈을 다시 발 앞에 두며 한 걸음 한 걸음 내려가는 하산의 길은, 산을 오르는 것보다 중요하고 그만큼 위험하다. 그 내려감에 대한 준비, 내려가기 위한 준비 - 언제까지 자신이 이룬 것을 보고만 있을수는 없지 않은가 말이다. 해가 져서 어두워 지기 전에 모든 것을 다 내려 놓고, 전방 좋은 시원한 바람을 포기하고 다시 내려가야 하는 산길 말이다. 아무튼 이 책은 많은 생각을 잇게 해주는 책인 것 같다.
다 소개하지 못하지만 책에서 마음의 쉼과 울림을 주는 글 귀들이 많다. 이 책 저자의 특기 인것 같다. 실제로 나는 이 책을 지옥철, 흔들리는 버스에서 읽었건만 마치 서재에 조용히 앉아서 이 책 저책 보며 쉼을 누린 것 같다. 이 하나의 책이 아니라 이 책이 머금고 있는 많은 책과 또 고미한 저자의 마음에서 비롯된 것이리라 생각된다.
내일이면 월요일 - 스트레스가 저기 쓰나미처럼 몰려오는 것이 보이지만 그 모든 것을 내면의 힘으로, 책의 힘으로, 서재의 힘으로, 공강과 시간을 초월 할 수 있는 마음의 힘으로 이겨내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이 책의 서평을 마무리한다. (지금 시간 월요일 새벽 2시가 다 되어 간다.)
아직 다가오지 않은 마흔을 준비하며..
지난번 <서른넷, 물음표 위에 서다>이후에 오랜만에 다시 자기계발서에 손을 내밀었다.
이번엔 마흔이다. 아직 서른 초반을 살고 있는 나에게 약간은 어울리지 않는 선택일지도 모르지만 사실 두렵기도하고 기대되기도하는 나의 마흔을 바라보며 책장을 넘기게 되었다.
1장을 넘기면서 마주한 문장이 방황하는 삼십대의 마음을 어루 만졌다. 그래 이 책은 바로 이런 마음을 내게 주었다.
아침부터 도닥거리리고 어루만지며 삼십대를 보내고 평온하고 지혜롭게 사유하는 사십대를 맞이하고 남은 오후를 길고 충만하게 보내라는 뜻이리라..
시인 장석주의 시선으로 각 장은 큰 줄기의 내용을 가지고 각 내용별로 추천하는 책과 함께 깊은 사유가 보여진다. "3만 권의 책을 품은 다독가"라는 작가의 설명처럼 엄청난 독서량과 깊은 사유 그리고 마흔을 돌아보는 성찰의 깊이만큼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든다.
책 내용 전체를 읽지 않고 목차만 읽어보아도 책을 통해서 작가가 하려고 하는 말을 어렴풋하게나마 알 수 있을 것 같다. 마흔을 지나는 사람의 경험과 사유가 고스란히 담긴 짧은 이야기 같다.
서른즈음에 그려보는 마흔은 낡고 고루하고 외로운 모습이 아니라 변화를 꿈꾸고 과감하게 시도하는 새로운 시작의 모습으로 바뀌고 있다. 인생은 점점 더 길어지고 부모님의 품에서 독립하는 시기는 점점 늦어지고 있으며 새로운 시도와 변화를 꿈꾸기엔 사회의 변화가 너무나 빠르고 숨쉴 틈이 없다.
하지만 변하지 않고 꿈꾸지 않는다면 이미 모든것을 포기한 것과 같다. 아직 늦지 않았다. 물론 늦었다고 생각하는 때가 가장 빠른 때이기도 하다.
서른의 중반을 맞이하며 지난 열정을 되돌아보고 마흔을 바라보면서 나는 다시 인생의 반전을 꿈꾼다. 아직은 꿈꾸고 변화를 갈망하는 마음만은 늙지않는 영원한 젊음이기를 꿈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