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개발 공부를 시작했을 때가 생각난다. 개발자 커뮤니티에서 ‘오픈소스 문화’라는 걸 접했을 때, 그 마인드와 투명성에 놀랐던 기억이 있다. 당시 대기업과 함께 일하면서 내부 리소스나 의사 결정 과정 하나하나까지 철저한 보안을 유지하는 모습을 보았기에, 로직이 담긴 소스 전체를 공개하고 그걸 유지 보수하는 오픈소스의 방식이 더 신박하게 와닿았던 것 같다.
그래서 나도 개발자가 되면 저런 태도로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다. 물론 지금도 마찬가지이다. 아쉽게도 아직 오픈소스에 기여한 적은 없지만, 미력하게나마 트러블슈팅 경험, 기술 면접을 위한 지식이나 기술 발표 준비 과정 등을 정리해서 포스팅한 건 스스로에게 주는 일종의 피드백이자, 동시에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이다.
몇 달 전 ‘모던리액트 Deep Dive’에서 오픈소스 생태계에 관한 짤막한 단락을 하나 읽었는데, 어떤 오픈소스는 재정난을 겪기도 하고, 어떤 급진적인 오픈소스는 악의적인 코드를 삽입하거나 더 이상 무료로 배포하지 않았던 사례도 있다는 내용이었다. 그냥 가져다 쓸 줄만 알았던 오픈소스 생태계에도 명과 암이 있다는 걸 인지했던 순간인데, 결국 오픈소스도 사람이 만드는 것이다. 우리의 행위가 금전적인 보상과 명확하게 결합하거나 확실한 동기부여가 되어야 지속 가능한 것과 다르지 않다고 느꼈다. 이 책은 그런 맥락에서 좀 더 이 생태계를 들여다 볼 수 있는 기회였다.
책은 크게 주제별로 다섯 개의 챕터로 나뉘어 있는데, 짧은 에세이의 묶음처럼 구성되어 있다. 비슷한 카테고리로 묶여 있음에도 다소 글의 연속성이 없고, 동어반복의 여지도 있으면서 기술적인 접근이 심화적이진 않지만, 오히려 그런 특성 덕분에 좀 더 대중적이라는 생각은 들었다. 기술 서적의 주제와 제목이지만, 인용하는 부분이나 사고의 흐름을 보면 인문학적인 터치가 느껴진다.
먼저 전반부 챕터를 통해 오픈의 의도를 여러 각도로 접근한다. 기업이 사용자를 확보하기 위한 오픈의 상업적 의도, 그리고 맥락은 다르지만 오픈하는 행위를 통해 개인의 성장을 도모하는 사례 등을 이야기한다. 그 와중에 짤막하게 지나갔지만 ‘인터넷 빈곤’을 다룬 부분이 인상적이었다. 비단 한국뿐만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인터넷을 이용하지 못하거나 저품질의 서비스를 이용하고 있는 사람들은 존재한다고 한다. 무언가 온전히 누리고 있을 때 잊고 있는 불편한 진실이 자리하듯, 인터넷 빈곤층이 여전히 존재한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이와 관련해 디지털 권력에 대해서도 생각해 보았다. 주로 기술적 우위를 점한 기업들이 디지털 권력을 가진다고 하지만, 우리 일상에서도 이미 경험하고 있다. 세대별 디지털 리터러시를 생각해 보면, 웹을 포함한 디지털 영역에서의 디지털 리터러시 능력은 젊은 세대가 압도적으로 좋을 수밖에 없다. 나는 아날로그와 디지털 사이의 과도기를 겪은 세대인데, 아날로그가 주류였던 어린 시절과 비교하면 지금은 너무나도 다른 세상이다. 아이폰이 나오기 전, 꼭 거기까지 거슬러 가지 않고 불과 10년 전, 혹은 하다못해 LLM이 대중화되기 전인 3년 전만 떠올려 봐도 변화는 너무나 빠르다. 새롭게 등장하는 기술을 계속 배우고 있지만, 나이가 들수록 그 변화에 적응하는 게 쉽지만은 않다. 그렇기 때문에 생기는 디지털 격차는 필연적이고, 디지털은 평등해 보이지만 숙련도에 따라 자연스럽게 디지털 계급이 정해진다. 배달 앱이 보편화되어 있어도 전화주문을 받는 소수의 가게만 이용할 수 있고, 남들이 앱으로 택시를 호출할 때도 하염없이 길에서 택시를 잡고 있는 삶도 있다는 의미이다. 당장 부모님의 스마트폰을 쥐고 뭐라도 하나 알려드렸거나 앱으로 택시를 불러드려 봤다면은 우린 그 삶을 이해할 수 있다.
웹 접근성 또한 마찬가지이다. 일반적으로 웹 접근성은 큰 장애가 있는 사람들을 위한 개념으로 생각하기 쉽지만, 사실 저시력자나 색각 이상자, 혹은 고령자에게도 중요한 개념이다. 일전에 같이 발표를 준비하던 분의 발표 제목은 ‘사이드프로젝트로 웹 접근성 시작하기’였다. 그 발표가 인상적이었던 이유는 잊고 있던 가치를 다시금 떠올릴 기회였기 때문이다. 사실 웹 접근성은 공기업이 아닌 이상 철저하게 챙기기 어려운 부분이다. 포커스 링(focus ring)의 개념을 알고 있다고 하더라도 이를 구현하기 위해 공수를 녹이는 일은 회사의 이익과는 거리감이 있다. 일종의 가치 구현의 영역이고, 일반적으로 그런 가치 구현은 이익으로 직결되기는 쉽지 않다. 그분의 발표는 회사에서 할 수 없다고 하더라도 이 가치를 잊지 않고 사이드프로젝트를 통해 웹 접근성을 챙겨보자는 맥락이었는데, 본인의 경험을 기반해서 서사가 있는 좋은 발표였다.
다시 책 이야기로 돌아와 보자면, 몽고DB SSPL, AWS와 엘라스틱의 공방이 흥미로웠다. 모든 생태계가 그렇듯 순수한 가치만으로는 지속되기 어렵다. 그 안의 어떤 이해관계가 형성되느냐에 따라서 다른 생각들이 생기고, 그 과정에서 가치가 훼손되기도 한다. 웹킷(WebKit)과 블링크(Blink)의 이야기는 일전에도 접한 적 있지만 다시금 흥미롭게 읽었다. 구글이 애플의 웹킷을 포크해서 블링크를 만드는 과정을 보면서 크롬 출시 당시 구글에게 브라우저가 어떤 존재인지 다시금 생각해 봤고, 기업의 이해관계에 따라서 오픈소스의 흐름이라는 게 바뀔 수 있음을 다시금 생각해 보는 계기가 되었다.
이 책은 ‘오픈’이라는 단어로 파생될 수 있는 다양한 가치관과 흐름을 다루고 있다. IT와 직접적인 관련이 없더라도 그 단어가 주는 힘에 대해서도 꽤 다각도로 설명하고 있고, 그걸 읽어내는 재미가 있다. 다만, '오픈소스에 기여하는 법'처럼 기술적인 가이드를 기대한다면 실망할 수도 있다. 이 책은 기술적 접근보다는 좀 더 이 가치에 대해 생각해 볼만한 주제를 내어놓는 형식에 가깝다.
'오픈'이라는 행위 자체는 단순히 소스 코드를 공개하는 것 이상의 의미를 가질 수 있다. 사회적 가치이자 개인적 성장이며, 더 나아가 우리가 추구해야 할 공정성과 투명성의 상징일 수 있다. 기술적으로나 윤리적으로 많은 고민이 필요한 영역이지만, 결국 오픈소스의 본질은 사람들에게 더 나은 세상을 만들어가는 도구를 제공하는 데 있다고 생각한다. 앞으로도 이 가치를 잊지 않고, 나 역시 작은 부분이라도 기여하며 그 흐름에 함께하고 싶다.
"한빛미디어 <나는 리뷰어다> 활동을 위해서 책을 제공받아 작성된 서평입니다."